일본 유학이나 워킹홀리데이를 온 수많은 한국인들이 생활비를 벌기 위해 가장 먼저 시작하는 것이 바로 '아르바이트(바이토)'입니다. 대개는 단순히 시간과 노동을 바꾸는 수단으로 생각하지만, 일본의 알바처는 생각보다 훨씬 강력한 '기회의 땅'이기도 합니다.
처음 일본에 와서 분위기 파악도 못 하고 "하이(네)", "이이에(아니오)"밖에 말하지 못하던 제가, 유학 생활을 마칠 때쯤 알바처 사장님에게 "우리 매장 점장으로 일해보지 않겠냐"는 파격적인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던 생생한 실화를 풀어보려 합니다.
컴맹 수준의 일본어, 그리고 뼈아픈 첫 실수
처음 알바를 시작했을 때는 그야말로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일본어 회화가 서툴다 보니 주변 눈치 보기에 급급했고, 긴장한 탓에 정말 어처구니없는 실수도 저질렀습니다.
하루는 매장을 찾은 손님이 단단히 화가 나셔서 소리를 지르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셨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저는 상황 파악을 전혀 못한 채, 그저 배운 대로 생글생글 미소를 지으며 "화장실은 2층입니다!" 하고 친절하게 안내를 해버렸습니다.
당시 저는 한창 이종격투기를 격렬하게 하며 시합준비도 하고 있었던 시절이라, 몸이 험악하게 울구락불구락하고 위협적이였습니다. 그런 거구의 외국인 알바생이 화를 내는 자신을 향해 환하게 웃으며 뜬금없이 화장실 위치를 대니, 손님이 순간 생명의 위협(?)을 느꼈는지 어마어마하게 당황해하더군요. 손님은 제대로 따지지도 못하고 안절부절못하다가 겨우 "윗사람... 윗사람 좀 불러주세요..."라며 말을 흐리셨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식은땀이 흐르면서도 빵 터지는 제 일본 유학 시절 최고의 흑역사입니다.
일본인을 복사하다: 1년 만에 일어난 기적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독하게 마음을 먹었습니다. 저는 함께 일하던 일본인 선배 스태프들의 행동을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손님을 대할 때 쓰는 억양, 감탄사, 사소한 말 한마디 한마디를 전부 귀로 듣고 받아 적고 머릿속으로 외운 뒤 그대로 흉내를 냈습니다. 그들의 언어 습관을 완전히 제 것으로 복사하듯 모방한 것입니다.
그렇게 치열하게 노력한 지 1년쯤 지났을 때, 계산대에서 잊지 못할 사건이 하나 터졌습니다.
한 손님이 결제를 마치고 영수증(료슈쇼)을 요청하면서 회사 이름을 적어달라고 하셨습니다. 아직 어려운 한자를 쓰는 데 서툴렀던 저는 조심스럽게 "제가 한자를 잘 못 씁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그 손님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요즘 젊은이들은 안 돼! 일본인이 그런 한자도 못 써서 어쩌려고 그래?"라며 핀잔을 주며 혼을 냈습니다. 그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지만, 속으로는 터져 나오는 기쁨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한국인인 제 어투와 표현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현지 일본인이 저를 진짜 일본인으로 오해하고 혼을 낸 것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여기서 엄청난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제가 정말 모르겠으니 여기에 좀 직접 적어달라고 종이와 펜을 내밀었더니, 정작 호통을 치던 그 손님 아저씨도 자기 회사 이름 한자를 못 적어서 쩔쩔매는 것이었습니다...ㅋㅋ 일본인도 헷갈려 하는 한자를 두고 외국인인 저에게 훈수를 두었던 것이죠. 속으로 '당신도 못 적으면서 왜 나한테 그래!' 싶어 헛웃음이 나왔지만, 한편으로는 제 일본어가 현지인 수준으로 인정받았다는 생각에 지독했던 한자 공부의 피로가 싹 날아가는 순간이었습니다.
"월급 올려줄 테니, 점장으로 일해라"
성실함과 더불어 현지인 수준으로 올라온 언어 능력 덕분에 저는 매장의 에이스가 되었습니다. 사실상 매장 관주, 재고 관리, 스태프 교육, 시프트 관리 등 이미 점장이 해야 할 거의 모든 업무를 제가 도맡아 처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유학 생활이 끝나고 학교를 졸업하게 되어 한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던 시점이었습니다. 그동안 저를 지켜보시던 사장님께서 따로 부르시더니 파격적인 제안을 하셨습니다.
"어차피 지금 점장이 하는 일 네가 다 하고 있잖아. 월급 제대로 올려줄 테니까 한국 가지 말고 우리 매장 점장으로 정식으로 일해볼 생각 없니?"
외국인 유학생에게 매장 전체를 책임지는 '점장' 자리를 제안하는 것은 일본 사회에서 정말 흔치 않은 일입니다. 비록 저는 다른 꿈이 있어 그 제안을 정중히 사양하고 귀국길에 올랐지만, 그때의 경험은 저에게 "진심을 다해 노력하면 외국에서도 내 가치를 알아주는구나"라는 인생 최대의 자신감을 심어주었습니다.
먼저 정착한 선배로서의 한마디 조언
처음엔 누구나 "하이", "이이에"밖에 못 하는 초보입니다. 화내는 손님에게 화장실을 안내하는 실수를 하더라도 기죽지 마세요. 주변 일본인 선배들의 말투와 행동을 스펀지처럼 흡수하고 내 것으로 만드는데 집중하세요. 내가 매장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면, 굳이 내가 이력서를 밀어 넣지 않아도 사장님이 먼저 지갑을 열고 "월급 올려줄 테니 가지 말아 달라"며 붙잡는 순간이 반드시 옵니다. 여러분의 성실함을 믿으세요.
다음 포스팅에서는 [일본 회사 문화 정복: '노미카이(회식)' 문화와 상사에게 이메일 쓸 때 비즈니스 경어]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